[기타 상식 >]뮤지컬 시카고의 모티브가 된 3개의 사건들

요즘 큰 인기를 받고 있는 뮤지컬 '시카고(Chicago)'를 이해하려면 1920년대 시카고 법정에서 벌어졌던 3가지 사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3가지 사건은 Beulah Annan (뷰라 애넌), Belva Gaertner (벨바 가트너) 그리고 Sabella Nitti (사벨라 니티)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여성 범죄자의 외모에 따라 유죄가 무죄로 되고 무죄가 유죄로 되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들을 모린 왓킨스(Maurine Dallas Watkins)라는 기자가 신문 기사로 썼으며, 이 글은 후에 희곡으로 발전했고, 그것이 다시 뮤지컬 '시카고'의 원작이 되었다. 


1. 불라 애넌 Beulah Annan 사건


불라 애넌 사건은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시카고'의 주인공 록시 하트의 모델이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고, 1920년대 시카고의 재즈 시대와 그 시대의 범죄와 부패, 그리고 법정에서 벌어진 쇼와 같은 재판 과정을 보여준다.

Beulah Annan은 1924년 4월 3일, 자신의 집에서 연인 해리 칼스테드(Harry Kalstedt)와 다투다가 총을 쏴 그를 살해했다. 사건이 발생 후, Beulah는 해리의 시신 옆에서 몇 시간 동안 재즈 음악인 "Hula Lou"를 틀어놓고 춤을 추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사건은 선정적인 보도로 다루어졌다.

변호사 역할

Beulah의 변호사는 재판에서 여성의 매력을 이용해서 대중의 관심을 최대한 끌어내고, 그녀의 매력을 활용해 배심원들을 설득했다. 그 변호사는 매우 교묘하게 그녀의 이미지와 성격을 이용해 동정심을 유도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불라의 변호사는 그녀를 순진하고 미모를 가진 여성으로 포장하며, 그녀가 단순히 일시적인 실수로 인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을 강조했다.  

1. 미모와 매력을 강조: 변호사는 불라를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잠시 판단을 흐린 나약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 범죄자를 동정적으로 보는 경향을 이용한 전략이었다. 불라는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여성이었기 때문에, 법정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2. 자기 방어 주장: 불라는 해리 칼스테드와의 다툼 중 우발적으로 총을 발사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는 이를 바탕으로 그녀가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상황이 갑작스럽게 일어나 통제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사건을 설명했다.

3. 동정심 유발: 변호사는 그녀가 젊고 순진하며, 그녀의 행동이 의도된 악의적 범죄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불라가 시체 옆에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 기묘한 행동도 그녀의 정신적 충격 때문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사건을 인간적인 실수로 포장하려 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 불라 애넌과 그녀의 남편(남편은 그녀의 무죄를 위해 전재산을 썼다고 알려져있다)


대중과 미디어의 반응

미디어는 불라 애넌 사건을 매우 화려하게 다루었다. 당시 시카고는 범죄 스캔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극도로 높았고, 불라의 미모와 상류층 생활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1. "최고의 미녀 살인범": 신문은 불라를 "시카고의 가장 아름다운 살인범"으로 묘사하며, 사건을 sensational하게 보도했다. 그녀의 매력적인 외모는 사건의 본질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고, 불라는 일종의 미디어 스타가 되었다.

2. 드라마처럼 이어지는 법정: 재판 과정에서 불라는 매력적인 옷차림과 차분한 태도로 법정에 등장했으며, 이는 배심원과 대중의 호감을 사는 데 기여했다. 언론은 그녀의 미모와 재판 중의 행동을 상세하게 다루며, 그녀의 사건을 일종의 드라마처럼 보도했다. Beulah는 처음에는 자신이 칼스테드를 정당방위로 살해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 중 여러 번 이야기를 바꿨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임신 중이었다고 주장하며 대중의 동정심을 사려 했다. 

무죄판결

그 결과, 1924년 5월 25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중은 그녀의 매력에 열광했고, 미디어는 그녀의 사건을 흥미진진한 범죄 스캔들로 다뤘다. 이 사건은 이후 "시카고" 뮤지컬의 록시 하트 캐릭터에 영감을 주었으며, 당대의 범죄와 여성, 그리고 미디어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재판장에서 여러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불라 애넌



헌신한 남편과 이혼

그녀의 남편 앨버트 애넌(Albert Annan)는 그녀의 무죄를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썼으나 무죄 판결후, 그녀는 남편 앨버트 애넌과 결별했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가 다시 이혼했다. 이 일로 인해 그녀는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비참한 죽음

결국 Beulah는  1928년 시카고의 결핵 요양소에서 2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녀는 혼자였고, 1924년 무죄 판결 이후 그녀가 받았던 대중의 주목이나 화려함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면서 개인적인 불안정함을 겪었고, 최종적으로는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보호 없이 생애를 마쳤다.


2. 벨바 가트너(Belva Gaertner) 사건

벨바 가트너(Belva Gaertner)는 1920년대 시카고에서 "러브런던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의 인물이다. 그녀는 뮤지컬 "시카고"의 캐릭터 벨마 켈리의 영감이 된 실존 인물 중 한 명이다. 벨바는 당대의 유명한 가수이자 사교계 인물로, 1924년 3월 11일, 그녀의 연인이었던 월터 로즈(Walter Law)가 벨바의 차 안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벨바와 월터는 그날 저녁 함께 술을 마신 후 차 안에서 말다툼을 벌였고, 얼마 후 월터가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된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월터는 차 안에서 총에 맞은 상태였고, 그의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으며 차 안은 술로 가득 차 있었다. 벨바는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있었으나, 자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벨바는 당시 자신이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그녀는 월터가 자신을 버릴까 두려워했고, 그가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 역할

벨바 가트너의 사건은 그녀의 변호사와 미디어의 역할로 인해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서, 당대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이미지와 편견을 반영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벨바 가트너 사건에서, 그녀의 변호사 윌리엄 스콧 스튜어트(William Scott Stewart)는 매우 전략적으로 그녀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으로 포장했다. 스튜어트는 벨바가 유명 가수였으며, 시카고의 상류층 여성으로서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1. 벨바의 사회적 배경: 스튜어트는 벨바를 고상한 출신의 여성으로 묘사하며, 그녀가 범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당대의 사회적 기준에 따르면, 상류층 여성은 범죄와는 거리가 멀고 우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벨바가 살인과 관련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했다.

2. 벨바의 취한 상태: 변호사는 벨바가 사건 당일 너무 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는 그녀가 고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없었음을 암시하려는 전략이었다.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이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을 동정적으로 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역시 벨바를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했다.

3. 사건을 자살로 묘사: 벨바의 변호사는 월터 로즈가 벨바를 떠나려고 했고, 그로 인해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리는 벨바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연애 사건의 피해자로 보이게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재판장에서 많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밸바 가트너


당시 대중과 미디어의 반응

당시 미디어는 벨바 가트너 사건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920년대 시카고는 범죄와 스캔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았던 시기였고, 언론은 벨바 가트너의 화려한 외모와 상류층 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사건을 sensational하게 다루었다. 미디어는 벨바의 매혹적인 외모와 그녀가 가진 사회적 지위에 주목하며, 그녀를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비극적인 인물로 그리는 데 기여했다.

또한, 시카고는 당시 여러 유명 여성 범죄자들의 사건이 주목받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벨바처럼 상류층 출신이거나, 미모와 매력을 가진 여성이었기 때문에 대중과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 


재판 이후의 삶

벨바 가트너(Belva Gaertner)는 무죄를 선고받은 후 비교적 조용한 삶을 살았다. 사건 이후 그녀는 대중의 이목을 끌지 않았고, 언론의 주목에서 멀어졌다.

1. 전 남편과 재혼 후 또 다시 이혼: 그 전 남편은 윌리엄 가트너로, 벨바는 재판 기간 동안에도 그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무죄 판결 후 두 사람은 다시 결혼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결국 이혼으로 끝났다.

2. 미디어에서의 퇴장: 벨바는 재판 이후에도 여전히 상류 사회에서 활동했지만, 그녀의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졌다. 당시 시카고는 여러 여성 범죄자들의 사건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벨바 가트너의 사건도 그 중 하나로 남았을 뿐, 이후 그녀의 삶은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 않았다.

3. 뮤지컬 "시카고"에서의 영감: 벨바 가트너의 사건은 이후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라는 캐릭터의 영감이 되었다. 벨마 켈리는 남편과 여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인물로, 벨바 가트너의 실화에서 비롯된 캐릭터다. 벨마 켈리의 캐릭터는 뮤지컬에서 큰 역할을 하며, 벨바의 사건이 당시 얼마나 많은 주목을 받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사벨라 니티(Sabella Nitti) 사건

사벨라 니티(Sabella Nitti)는 1923년 시카고에서 남편 프란체스코 니티의 살해 혐의로 기소된 후 사형을 선고받은 최초의 여성으로, 그녀의 사건은 당시 사회적 편견과 법적 불공평을 잘 드러낸다. 불라와 벨바 사건과는 달리 충분히 무죄가 되어야 할 상황에서 무식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이 유도된 경우다. 그녀의 사건은 이후 뮤지컬 "시카고"의 헝가리 발레리나 캐릭터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첫 재판과 사회적 편견

사벨라 니티(Sabella Nitti)는 이민자이자, 외모가 미국 사회의 미적 기준에서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을 받았다.  당시 이탈리아 이민자에 대한 강한 편견과 여성 혐오가 작용했던 재판으로, 이러한 요소들이 초기 재판에서 그녀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 주요 원인이었다.

사건 배경

사벨라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로, 남편의 실종 후 살해된 것으로 의심받으며 기소되었다. 경찰은 남편의 부패한 시신을 발견했지만, 이를 사벨라의 범행이라고 단정지을 만한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그러나 검찰은 사벨라가 남편을 살해하고, 젊은 연인 피터 크루델레와 함께 도망가려고 했다고 주장했으며, 1923년, 사벨라와 피터가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재판장 편견의 이유

당시 법정은 사벨라에 대해 극도로 차가운 분위기였다. 그녀는 이탈리아 출신의 농부로,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고, 시카고의 상류층과 매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외모와 배경은 배심원들이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검찰은 정황 증거만으로도 사벨라를 유죄로 몰아가며, 그녀가 젊은 연인과 함께 남편을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강화했다.



초기 재판에서의 편견과 분위기

1. 편견과 차별: 그녀의 외모는 언론과 검찰에 의해 "지저분하고 잔인한 이민자"로 묘사되었으며, 당시 그녀의 낯선 외모와 언어 장벽은 배심원들과 대중으로부터 동정심을 얻지 못하게 했다. 언론은 특히 사벨라의 외모와 성격을 과장하여 부정적으로 보도했고, 이는 사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2. 언론의 부추김: 언론은 그녀를 "지저분하고 잔인한 농부"로 묘사했고, 검찰은 그녀의 외모와 성격을 이용해 못생긴 잔인한 살인자로 몰아갔다. 특히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의 기자는 그녀를 "동물 같은 농부"로 묘사하며 대중의 편견을 부추겼다.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의 기자 제니비브 포브스는 사벨라를 "동물 같은 농부"라고 부르며, 그녀를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탈리아 이민자 여성으로 묘사했다. 이 같은 보도는 사벨라가 유죄일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했으며, 그녀의 불리한 처지를 더욱 악화시켰다.

3. 재판의 문제점: 사벨라는 바리(Bari) 지역 방언을 사용했지만, 첫 재판에서 제대로 된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녀는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고, 재판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검찰은 사건에 대해 명확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벨라를 유죄로 몰아갔다.


무죄판결 후 사람들과 사진을 찍는 사벨라


1심 판결 사형

최종적으로 사벨라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는 시카고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첫 여성이 되는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배심원들도 이러한 결과에 대해 꺼림칙한 마음을 가졌지만, 당시 사회의 분위기와 편견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다는 평가가 많다.

헬렌 시레즈(Helen Cirese)의 변호 전략

사벨라의 첫 변호사는 그녀를 제대로 변호하지 못해 재판은 불리하게 흘렀지만, 항소 과정에서 젊은 여성 변호사 헬렌 시레즈가 사건을 맡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헬렌은 사벨라가 대중과 배심원들의 동정을 얻지 못한 이유가 외모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사벨라의 외모를 개선하기 위한 메이크오버 전략을 사용했다. 그녀는 사벨라의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시키며 외모를 바꾸었고, 영어를 가르치는 등 사벨라를 보다 현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게 했다. 이 전략은 큰 효과를 발휘했고, 배심원과 대중의 시선이 달라졌다. 

재판 결과

헬렌의 전략은 통했고, 2심 재판에서 사벨라는 무죄로 풀려났으며, 검찰은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채 결국 기소를 포기했다. 사벨라는 풀려나 이후 조용한 삶을 살았다. 즉, 사벨라는 편견과 차별 속에서 죄 없이도 사형에 처해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항소 과정에서 변호사 헬렌 시레즈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카고 재판장은 무고한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왼쪽부터 벨바 가트너, 불라 애넌, 사벨라 니티 / 살인죄로 린드세이라는 여성의 재판장에서